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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건축학개론] 사랑과 상실의 기억과 성장

by 두하니 각성일기 2025.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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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별 기대 안 했다. 그냥 뭐, 멜로 영화 하나 틀었을 뿐인데… 이상하게, 한참을 멍하게 봤다. 이건 단순히 "사랑 이야기"라고 하기엔 너무 조용하고, 깊은 무언가가 있었다. 뭐랄까, 속에서 천천히 퍼지는 느낌이었다.

1. 기억 

영화는 옛날 대학생 시절 이야기로 시작된다. 건축과 학생 승민. 별로 튀지도 않고, 그냥 평범한 남자애다. 근데 그가 한 여자를 만난다. 서연이다. 서연이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말도 잘하고, 눈빛도 또렷했다. 승민이는 그 애를 좋아했지만,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냥… 몰래 바라보고, 설계 과제로 서연이 집을 설계해줬다. 그게 고백이었다. 근데 말로 하진 못했다.

그거 보는데, 예전에 나도 그랬던 게 떠올랐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아무 말 못 했던 그때. 그저 옆에 있는 것만으로 좋았고, 그 사람이 웃는 걸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졌던 그런 시절.

영화는 그런 걸 아주 조용하게, 근데 또 되게 짙게 보여준다. 말 한마디 없이도, 그냥… 다 느껴졌다. 영화 속 감정들이 너무 진짜 같았다. 특히 승민이가 서연이를 멀리서 바라볼 때, 그 눈빛에서 다 드러났다. 그리고 비 오는 날 우산 아래서 둘이 서 있던 장면. 그때 아무 말도 안 했지만, 그 순간에 서로의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도 그런 적 있었다. 말로는 표현 못 했지만, 마음으론 다 알고 있었던... 그런 순간들이 생각났다.

승민이 서연이에게 설계한 집을 보여줄 때, 그 집에는 창문이 많았다. 빛이 들어오는 창문. 그게 서연이를 향한 승민의 마음이었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니까, 그냥 집으로 만든 거다. 아마 그 집은 승민의 마음을 그대로 옮겨놓은 거였을 거다.

2. 성장 

시간이 훅 지나간다. 승민은 어른이 됐다. 건축가가 됐다. 그리고 서연을 다시 만난다. 예전 같지 않다. 이젠 눈도 마주치고, 말도 한다. 근데… 마음은 여전한 것 같다. 예전엔 말 못 했고, 지금은… 말할 수 있는데 말 안 한다.

왜일까. 내가 보기엔, 그게 다 자란 거다. 진짜 어른이 되면, 그냥 말한다고 다 해결되지 않는 걸 안다. 그래서 조용히 있는다. 그 조용함 안에 다 들어있다.

어릴 땐 감정이 앞서고, 커가면서는 그 감정이 뭔지 천천히 알게 된다. 그게 '성장'인 것 같다. 승민이도 그랬다. 설계도가 달라졌고, 표정도 달라졌고, 마음 쓰는 방식도 달라졌다. 그의 건축 스타일도 바뀌었다. 처음엔 이상만 가득했는데, 어른이 되면서 현실적인 것들도 생각하게 됐다. 집을 설계할 때도 예전엔 그냥 예쁘게만 그렸는데, 이젠 사람이 실제로 살기 좋은 집을 그린다. 이건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엔 그냥 막연히 좋아한다는 감정만 있었는데, 이젠 그 감정이 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된 거다. 서연이를 다시 만났을 때, 승민은 더이상 당황하지 않았다. 떨리긴 했지만, 어른처럼 대화했다. 그렇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내 첫사랑 생각이 났다. 그 사람을 지금 만나면... 나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때처럼 어색하게 있진 않겠지...

그걸 보면서 나도 생각했다. "아, 나도 옛날엔 왜 그랬을까?" 그런 생각이 자꾸 났다.

3. 사랑 

이 영화 속 사랑은 소리도 없고, 색깔도 연하다. 근데 되게 깊다. 누군가를 '정말' 좋아했지만 말 못 한 기억. 그냥 설계도 하나에 마음을 담은 그 감정. 그게 왜 이렇게 오래 남는지 모르겠다.

둘이 다시 만났을 때, 그동안 못했던 말들을 하나씩 꺼낼 줄 알았다. 근데 안 그랬다. 둘 다 조용히 웃기만 했다. 이해한 거다. 사랑이 꼭 이어져야만 의미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예전에 승민이 서연에게 설계해준 집이 있었다. 그 집 모형은 사라졌지만, 그 마음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것처럼, 사랑도 표현하지 않아도 마음속에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영화는 보여준다.

서연이가 카페에서 승민을 만났을 때, 그냥 웃기만 했다. 예전처럼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근데 그 웃음에는 "아, 그때 그랬었지"라는 기억들이 담겨 있었다.

나도 예전에 좋아했던 사람을 길에서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별말 못하고 그냥 인사만 했는데, 그 짧은 순간에도 옛날 생각이 다 났었다. 그때 못했던 말들, 하고 싶었던 말들...

그 말 못 했던 그 시절의 그 마음. 그게 그냥 '예쁘게 남는 거', 그걸 지키는 것도 사랑이라고… 그들은 생각한 것 같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게 됐다.

4. 상실 

사람은 살면서 많이 잃는다. 사람도, 기회도, 말 한마디도… 『건축학개론』은 그런 걸 건축이란 주제로 풀어낸다.

집을 짓는 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사람 마음도 그렇다. 잘 설계했어도 틀어지고, 무너지고, 때로는 완성하지 못하고 멈추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 승민이 설계한 집도 결국 완성되지 못했다. 그냥 모형으로만 남았다. 서연에게 보여주지도 못했다. 그런데 그 미완성의 집이, 나중에 성인이 된 승민에겐 가장 소중한 기억이 됐다.

완성되지 못한 것들이 항상 가장 오래 남는다. 마음속에 계속 남아서, 자꾸 생각나게 한다. 영화에서 서연이랑 승민이 다시 만났을 때, 서연이 이미 다른 사람과 약혼한 상태였다. 그래서 둘의 관계는 그대로 추억으로 남았다. 완성되지 못한 채...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고백도 못하고 끝난 사랑이 있었는데, 그 미완성의 감정이 가끔 생각나면 마음이 이상하다. 그럴 때마다 "그때 고백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하게 된다.

승민과 서연의 사랑도 그랬다. 처음부터 끝까지 미완성이었다. 근데… 그게 꼭 나쁜 건 아니었다. 둘은 그 감정을 안고 살아간다. 기억하고, 그 시절을 아프지만 소중하게 떠올린다.

나도 그랬다. 끝나지 못했던 사랑이 하나 있다. 그때는 너무 아팠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마음이 날 만들었다. 조금씩, 어른이 되게 했다.

결론 — 우리는 모두, 그 시절을 안고 살아간다

『건축학개론』은 조용한 영화다. 큰 사건은 없다. 소리도 작다. 근데 그 안엔 우리가 다 겪었던 것들이 들어 있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좋아했던 마음. 그 마음을 말하지 못했던 후회.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한 그 감정.

이건 그냥 영화가 아니었다. 나한테는, 그때 말 못 했던 내 마음을 꺼내보게 해준… 조용한 거울 같았다.

지금 그 사람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잘 지내고 있을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아무 일도 없었지만, 그 마음만은 내 안에서 오래 남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그건 지금의 나에게도 꼭 필요한 한 조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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